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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최초 사회복지관 ‘태화여자관’을 시작으로, 여성과 아동 대상의 복지사업, 전쟁 후 극빈층 구호와 사회재건 등 지역사회 계발에 초점을 둔 시기

사회복지관의 효시 태화여자관 개관

[1921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지역사회계발

1921년 4월 4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중심부에 공식 개관한 태화여자관은 우리나라 사회복지관의 효시로써 오늘날 사회복지관의 총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미국 남감리회 여선교사 마이어즈(M. Myers)는 사회선교를 목적으로 태화여자관을 설립을 주도하고, 초창기 태화사회사업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마이어즈는 소외된 자들을 위한 태화여자관 터를 마련하기 위해 3.1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이완용 소유의 명월관 요리집을 인수하여 태화여자관을 개관하였는데, 오늘날 태화여자관이 있던 자리(인사동 현 감리회태화복지재단)는 3.1 독립선언문 낭독기념 장소로서의 역사적 의미도 있다. 자료사진은 1926년 순화궁에서 태화 초창기 직원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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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급식 아동보건사업

[1928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아동보건

1920년대 당시 10세 미만 아동 사망율은 50%에 달할 만큼 높아 태화여자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동보건사업 시작하였다. 1924년 간호학을 전공한 로젠버거(E. T. Rosenberger)를 초빙해 태화진찰소를 설립하고, 1928년 우유급식소(milk-station)를 개설하여 한국 아동들의 영양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무료 우유를 공급함과 동시에 자모회, 무료 목욕, 보건 강연 등을 통해 어머니들에게 위생과 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교육하며 죽어가는 아기를 '살려내는 일'을 함으로 당시 아동 사망률을 낮추고, 영양 상태를 개선하며 한국 사회에서 보건 위생에 대한 인식 변화를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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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아이들을 위한 유희장(Play-ground) 사업

[1925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아동보건

태화유치원 사업의 연장선상으로 '거리의 아이들'을 위해 오후에 유희장(Playground)을 무료로 개방하면서 1925년 구체적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보고서에 따르면 매일 200명의 아이들이 모였고, 이들은 대부분 버림받은 아이들(neglected children)이었다. 태화여자관은 태화유치원에 등록한 부잣집 상류층 아이든 빈민촌의 거리의 아이든 모두 받아들여 배움과 놀이의 장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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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구락부(Club)

[1921년 이후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여성교육

1920년대, 사회적 취약계층인 여성의 사회적 연결 고리의 역할을 하는 다양한 구락부가 조직되었다. 망월구락부(Full Moon Club)가 고등여학교 교사들의 친목모임으로 제일 먼저 시작되었고, 비교적 부유한 여성들이 모여 요리법을 배우는 모임인 부인구락부에 이어 어머니구락부, 학생구락부, 영어구락부, 운동부 등 다른 모임들이 형성되어 태화여자관이 개관된 지 불과 10년 만에 태화여자관은 모든 계층의 부녀자를 위한 여러 형태의 복지사업을 아우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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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여학교

[1935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여성교육

태화여학교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기혼여성들을 위한 초등교육기관으로 1921년 4월 1일 개관한 태화여자관에 배우려는 여인들이 몰려들면서 재봉과와 가정주부를 위한 야학부가 설치되었고 이 흐름을 이어받아 1922년 정식 출범하였다. 정규 6년 과정을 4년으로 축소한 초급과정을 개설하여 읽기, 쓰기 등 기초교육부터 재봉, 요리, 영어 등 실용적인 기술까지 광범위하게 다루었고 한 학기에 130명 이상의 학생이 등록하였다. 당시 지방에서 올라온 극빈 여성들까지 입학하면서 기숙사를 운영하였는데 이는 한국 여성들의 교육 열망을 충족시킬 뿐 아니라 여성들의 사회적 자립 지원과 가정 내 경제적인 기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후 태화여학교는 1936년 이숙종에게 인계되어 성신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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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후 아동복지사업

[영등포종합사회복지관] 구호 및 사회재건

해방이후 아동복지사업을 펼친 CCF(Christian Children's Fund)는 1975년 영등포종합사회복지관(당시 명칭, 봉천동 강남사회복지관)을 개관한 한국어린이재단의 출범으로 이어진다. 1948년 10월, 3개의 아동복지 수용시설 400여명 아동 대상으로 첫 재정적 지원을 시작하여, 1950년 6.25 한국전쟁 이후 전쟁고아 및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아동 지원 사업을 체계적으로 이어가면서 1955년에는 74개 시설 9,078명까지 지원 규모가 확대되었다. 1960년 5월, 서울 서소문동에 CCF한국사무실을 준공, 보다 적극적으로 사업을 전개하여 시설중심에서 가정중심의 복지사업 전환을 이끌어 갔으며, 1979년 한국어린이재단(현, 초록우산)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독자적인 한국아동복지사업을 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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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대학부설 복지관, 이화사회관 개관

[1956이화여자대학교 종합사회복지관] 지역사회계발

1956년 7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및 학생들의 지원금과 외원으로 이화사회관이 설립되었다. 개관 당시, 극빈 어린이를 위한 Well Baby Clinic을 통해 본교 의과대학 간호학과 부설 모자보건소와 협력하여 의료치료 및 보건관리에 힘썼으며, 부녀들을 위한 한글반, 한문반, 양재반 등교육사업과 공중목욕탕 운영, 유아 및 임산부 진찰과 상담 등 의료보건사업에도 적극 힘썼다. 당시, 신촌 인근 주민의 복리 증진을 도모할 뿐 아니라, 본교 사회사업과 학생들에게 실습기회를 제공하여 이론과 실제를 부합시키고자 하는 부가적 목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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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상담사업

[1961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기타

가정상담(Family Case Work)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경제적 지원보다 상담에 중점을 두어 상담원이 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필요한 사람들과 만나 상담을 진행하였으며, 상담의 범위는 개인적인 문제 해결부터 소액 대부, 의료 지원 등 다양한 현실적 도움을 포함하였다. 또한 가정문제에 적극 개입하여 정신적 상담과 더불어 필요한 경우 사회사업기관이나 의료기관과 연계해 치료와 도움을 제공하였다. 가정상담사업은 경제적 빈곤, 열등감, 질병, 교육 부족 등 지역사회의 주요 문제 해결에 기여할 뿐 아니라 상담을 통해 정신적·심리적 지원을 제공하여 깨어진 가정의 복구와 부부의 재결합을 도모해 건강한 가정을 유지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이 사업의 성과는 가정상담 케이스파일(태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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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복지관의 효시 태화여자관 개관

    분류명지역사회계발
    기관명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년도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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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성 구락부(Club)

    분류명여성교육
    기관명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년도1921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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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거리의 아이들을 위한 유희장(Play-gro...

    분류명아동보건
    기관명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년도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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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우유급식 아동보건사업

    분류명아동보건
    기관명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년도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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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태화여학교

    분류명여성교육
    기관명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년도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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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최초 대학부설 복지관, 이화사회관 개관

    분류명지역사회계발
    기관명이화여자대학교 종합사회복지관
    년도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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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가정상담사업

    분류명기타
    기관명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년도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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